역사 이야기

10화: 저항의 몸부림 - 동일방직 알몸 투쟁과 부천 성고문 사건 ✊

아리파파 2025. 8. 1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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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저항의 몸부림 - 동일방직 알몸 투쟁과 부천 성고문 사건 ✊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 그 열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화려한 성장 뒤에 가려진 여성 노동자들의 눈물과 희생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오늘은 그들이 더 이상 희생양이 되기를 거부하고, 빼앗긴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벌였던 처절하고도 위대한 저항의 순간들을 기록하려 합니다.

저항의 몸부림 - 동일방직 알몸 투쟁과 부천 성고문 사건 ✊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 노동조합, 희망의 깃발을 들다

기계보다 못한 취급을 받던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흩어져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요. 그들은 '노동조합'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글을 배우지 못해 삐뚤빼뚤한 글씨로 유인물을 만들고, 일 끝나고 쪽잠을 자야 하는 피곤한 몸으로 모여 회의를 했지만, 그들의 눈은 희망으로 빛났습니다.

하지만 회사와 정부는 노동조합을 눈엣가시처럼 여겼습니다. 어용 노조를 만들어 민주 노조를 탄압하고, 조합 간부들을 부당하게 해고하거나 '빨갱이'로 몰아 경찰에 넘기기 일쑤였죠. 그럼에도 여성 노동자들은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끈질기게 싸워나갔습니다.

💔 세상에서 가장 슬픈 저항, 동일방직 알몸 투쟁

1978년, 인천의 동일방직에서는 민주 노조를 지키려는 여성 노동자들과 이를 파괴하려는 회사, 그리고 경찰의 충돌이 극에 달했습니다. 회사는 남성 노동자들을 동원해 노조 대의원 선거를 방해했고, 이에 항의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습니다. 경찰은 이를 지켜보기만 할 뿐, 오히려 피해자인 여성 노동자들을 연행해갔죠.

이 끔찍한 폭력 앞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한 200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마지막 저항의 수단을 선택합니다. 바로 옷을 벗는 것이었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서로의 팔을 걸고 스크럼을 짠 채, 그녀들은 "우리를 죽여라!"고 절규했습니다. 😭 이것은 자신들이 가진 마지막 존엄성이자 가장 연약한 몸을 무기로, 폭력 앞에 무릎 꿇지 않겠다는 처절한 외침이었습니다. 이 '알몸 투쟁'은 당시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개발 독재 시대 여성 노동자들이 겪었던 억압과 저항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 "나는 상품이 아니다!" - 부천 성고문 사건

시간이 흘러 1980년대, 전두환 군부 독재 시절에도 국가 폭력은 계속되었습니다. 1986년, 서울대 학생이었던 권인숙 씨는 노동 현장의 실태를 알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부천의 한 공장에 위장 취업했다가 경찰에 연행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시 형사였던 문귀동에게 끔찍한 성고문을 당하게 되죠.

문귀동은 권인숙 씨에게 "운동권 애들은 혁명을 위해 성을 무기처럼 이용한다며?"라는 식의 모욕적인 말을 퍼부으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완전히 짓밟는 성적 폭력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권인숙 씨는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이 사실을 세상에 폭로하기로 결심합니다.

검찰과 정부는 이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습니다. 오히려 "성을 혁명의 도구로 이용하려 한다"며 권인숙 씨를 파렴치한 운동권 학생으로 몰아갔죠. 하지만 진실을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독재 정권의 비도덕성과 야만성을 만천하에 드러냈고, 여성 인권 운동에 큰 불을 지폈습니다. 특히 이 사건은 이듬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함께, 1987년 6월 민주 항쟁을 촉발하는 중요한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

동일방직의 여성 노동자들과 권인숙 씨의 용기 있는 저항은 단순히 개인의 권리를 찾기 위한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 위대한 몸부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