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국가 폭력의 그림자 - 독재 정권의 고문 실상 ⛓️
7화: 국가 폭력의 그림자 - 독재 정권의 고문 실상 ⛓️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 그 일곱 번째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두 편에 걸쳐 해방 공간의 비극, 제주 4.3 사건의 깊은 상처를 들여다보았는데요. 오늘은 다시 시간의 흐름을 따라, 1970년대 유신 독재 시절로 들어가 보려 합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화려한 경제 성장의 그늘 아래, 민주주의를 외치던 이들은 어떤 고통을 겪어야 했을까요? 이번 이야기는 국가가 국민에게 휘둘렀던 가장 비열하고 잔혹한 폭력, '고문'에 대한 기록입니다.
😱 "남산에 가면 코로 설렁탕을 먹는다"
"남산에 가면 살아서 못 나온다", "남산에 가면 코로 설렁탕을 먹는다". 1970년대 어른들 사이에 쉬쉬하며 떠돌던 끔찍한 말이었습니다. 여기서 '남산'은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를 의미했죠. 정부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만들거나, 시위에 참여하거나, 심지어 술자리에서 정권을 비난하는 농담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평범한 학생, 교수, 회사원, 예술가들이 어느 날 갑자기 검은 차에 실려 남산이나 '남영동 대공분실' 같은 곳으로 끌려갔습니다.
이곳은 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무법지대였습니다. 한번 끌려가면 가족조차 행방을 알 수 없었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죠. 오직 좁고 어두운 방 안에서 '기술자'라 불리는 고문 전문가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평범한 학생을 북한의 지령을 받은 폭도로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 상상을 초월하는 비인간적 폭력
독재 정권이 자행한 고문은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히 파괴하기 위해 고안된, 상상을 초월하는 악행이었습니다. 잠을 재우지 않고 계속 물을 들이붓는 '물고문',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코에 고춧가루 물을 붓는 고문, 통닭구이처럼 봉에 매달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고문 등...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비인간적인 폭력이 '조사'라는 이름으로 매일 밤낮으로 벌어졌습니다.
특히 훗날 민주화 운동의 대부가 된 고(故) 김근태 의장이 겪었던 '전기고문'의 증언은 그 잔혹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그는 회고록에서 "전기고문은 사람의 육체를 한계 상황으로 몰고 가 결국 그 영혼마저 파괴시켜 버린다"고 기록했습니다. 땀구멍에서 연기가 피어오를 정도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사람들은 거짓 진술서에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한 인간의 영혼을 말살시켜 다시는 정권에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비열한 폭력이었습니다.
💔 살아남아도 끝나지 않는 고통
고문실에서 살아나온다는 것은 결코 끝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길고 끔찍한 고통의 시작이었죠. 육체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 몰라도, 영혼에 새겨진 흉터는 평생 그들을 괴롭혔습니다. 많은 피해자들이 극심한 트라우마(PTSD)에 시달렸고, 밤마다 악몽을 꾸거나 작은 소리에도 경기를 일으키며 살아야 했습니다.
사회적 고통은 더욱 가혹했습니다. '빨갱이', '간첩'이라는 낙인이 찍힌 그들과 그 가족들은 평생을 감시와 차별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이웃에게 손가락질당했으며, 자식들마저 '빨갱이 자식'이라 불리며 고통받았죠. 국가는 한 사람의 인생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주변의 삶까지 송두리째 파괴했습니다. 고문은 육체에 가해진 폭력을 넘어, 한 인간의 사회적 존재 자체를 말살하는 가장 잔인한 국가 폭력이었습니다.
이렇게 1970년대 독재 정권은 고문이라는 야만적인 방법으로 국민의 입을 막고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끔찍한 국가 폭력이 어떻게 '민청학련 사건'이라는 거대한 조작 사건으로 이어졌는지, 그 구체적인 실상을 파헤쳐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