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여성 노동자의 눈물 - 개발 독재 시대의 착취와 폭행 👩🏭
9화: 여성 노동자의 눈물 - 개발 독재 시대의 착취와 폭행 👩🏭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 그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독재 정권이 '민청학련'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조작해 어떻게 민주주의를 외치던 이들의 삶을 파괴했는지 살펴보았는데요. 오늘은 시선을 조금 돌려, 정치적 억압만큼이나 무거웠던 경제 성장의 그늘, 그 속에서 신음해야 했던 우리 어머니, 누이들의 이야기, 바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 '한강의 기적' 그늘에 가려진 '공순이'들
1970년대,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합니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전국은 거대한 공사장과도 같았죠. 이 성장의 중심에는 '수출'이 있었고, 수출품을 만드는 공장에는 앳된 얼굴의 여성들이 가득했습니다. 가난한 농촌에서, 오빠와 남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혹은 굶주리는 가족을 위해 무작정 상경한 10대, 20대 여성들이었죠. 😢
정부는 그들을 '산업 역군', '수출의 꽃'이라 부르며 칭송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공순이'라는 비하적인 이름으로 불렀죠. 가발 공장, 봉제 공장, 전자제품 공장 등에서 하루 종일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일했던 그녀들.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장은 바로 이 이름 없는 영웅들의 희생과 눈물 위에 세워진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 감옥보다 못한 현실, 닭장 공장
그녀들이 일했던 공장의 환경은 끔찍했습니다. 창문도 거의 없는 좁은 공간에 수십, 수백 명이 빽빽하게 들어앉아 기계를 돌렸죠.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공기 중에는 항상 먼지와 유독한 약품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공장을 '닭장'이라고 불렀어요. 하루 15시간이 넘는 고된 노동에 잠이 쏟아지면, 관리자들은 잠 깨는 약(각성제)을 나눠주며 일을 시켰습니다.
월급은 터무니없이 적었습니다. 당시 남성 노동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며, 그 돈마저 고향에 보내고 나면 정작 자신들은 라면 하나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죠. 비좁은 기숙사는 수십 명이 한 방을 써야 했고, 영양실조와 과로로 폐결핵 같은 질병에 시달리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그녀들의 절규는, 말 그대로 기계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던 당시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
😭 닫힌 문 뒤의 폭력과 성추행
육체적 고통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인격적인 모독과 폭력이었습니다. 관리자들은 사소한 실수를 핑계로 욕설과 폭행을 일삼았습니다. 졸거나, 작업 속도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어김없이 주먹이 날아왔죠. "미싱대에 머리를 박고, 바늘에 손가락이 찔려도 아픈 줄도 몰랐다"는 당시 노동자들의 증언은 그들이 겪었던 고통의 깊이를 짐작하게 합니다.
특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성희롱과 성추행은 일상이었습니다. 관리자들은 권력을 이용해 공공연하게 여성 노동자들의 몸을 더듬거나 성적인 농담을 던졌습니다. 저항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곧바로 해고당하기 일쑤였기에,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저 수치심을 삼키며 견뎌야만 했습니다. 공장은 그녀들에게 일터이자,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폭력의 공간이었습니다.
이렇게 개발 독재 시대의 경제 성장은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을 제물로 삼아 이뤄졌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처럼 비참한 현실 속에서, 그녀들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어떻게 용감하게 저항했는지, 그 눈물겨운 투쟁의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