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이야기

1392년, 고려의 끝과 조선의 시작: 혼돈 속에서 피어난 새로운 국가

by 아리파파 2025. 8. 18.
반응형

 

 

1392년, 고려의 끝과 조선의 시작: 혼돈 속에서 피어난 새로운 국가

연재 제1회: 조선 건국 전후의 상황

1392년, 역사는 한 시대의 종말과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동시에 알리는 격변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474년간 이어져 온 고려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인 조선이 건국된 해입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왕조가 바뀐 것을 넘어, 당시 백성들의 삶과 사회 전체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했습니다. 오늘은 고려의 마지막과 조선의 시작, 그 숨 막히는 역사적 순간들을 되짚어보려 합니다.

고려 말은 내우외환의 시기였습니다. 권문세족의 횡포와 부패는 극에 달했고, 사회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외부에서는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최영과 이성계와 같은 신흥 무장 세력과 정도전, 정몽주를 비롯한 신진 사대부들이 새로운 개혁의 주체로 떠오르게 됩니다.

1392년, 고려의 끝과 조선의 시작: 혼돈 속에서 피어난 새로운 국가

위화도 회군, 운명의 갈림길

조선 건국의 결정적인 서막을 연 사건은 바로 1388년에 일어난 '위화도 회군'입니다. 당시 고려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최영 장군은 명나라가 철령위(鐵嶺衛)를 설치하며 고려의 영토를 요구하자, 요동 정벌을 주장했습니다. 요동 정벌은 당시의 국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모한 계획이었습니다.

고려의 대표적인 명장이었던 이성계는 요동 정벌에 대해 네 가지 불가론(四不可論)을 내세우며 반대했습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역할 수 없으며(以小事大), 여름철에 군사를 일으킬 수 없고(夏月發兵), 모든 군대가 떠나면 왜적이 침략할 우려가 있고(遠征之弊), 장마철이라 활의 아교가 녹아 무기를 제대로 쓸 수 없다(天時之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최영과 우왕의 강경한 태도에 결국 출정을 감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압록강의 위화도에 이르러 회군을 단행합니다. 명분은 사불가론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무모한 전쟁으로 백성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판단과 함께, 권문세족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신진 사대부들의 정치적 의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조선의 탄생과 새로운 지향점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장악한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들은 고려를 개혁하려 했으나, 그들 내부에서도 급진파와 온건파로 나뉘게 됩니다.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급진파는 고려 왕조를 뒤엎고 새로운 국가를 세울 것을 주장했고, 정몽주를 중심으로 한 온건파는 고려를 개혁하여 유지할 것을 원했습니다. 결국 이방원의 손에 정몽주가 제거되면서, 고려 왕조의 운명은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1392년 7월 17일, 이성계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선위를 받아 수창궁에서 왕위에 오릅니다. 이로써 조선이 건국되었습니다. 이성계는 즉위 후 국호를 '조선(朝鮮)'으로 정하며, 단군조선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정도전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고, 민본주의 사상에 입각한 정책들을 펼쳐나갔습니다.

"군주는 국가에 의존하고, 국가는 백성에게 의존한다. 그러므로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요, 군주의 하늘이다." - 정도전

이는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닌,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 새로운 정치 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정도전은 재상의 권한을 강화하여 왕권을 견제하는 시스템을 구상하는 등, 새로운 나라의 기틀을 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급진적인 개혁은 훗날 '왕자의 난'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의 씨앗이 되기도 했습니다.

숨겨진 이야기: 정도전의 꿈과 한계

우리가 흔히 교과서에서 접하는 조선 건국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정도전의 활약으로 요약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권력 투쟁과 이상주의자의 좌절이 숨겨져 있습니다. 정도전은 단순히 새로운 왕조를 세운 책략가를 넘어, 유교적 이상 국가를 꿈꾼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왕이 아닌 재상이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는 '재상 중심 정치'를 주장했습니다. 이는 왕의 독단적인 정치를 막고, 유능한 신하들이 국정을 운영함으로써 백성들의 삶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은 결국 왕권 강화를 염원했던 이방원과의 갈등을 낳게 됩니다. 정도전이 이성계의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려 하자, 이방원은 사병을 일으켜 정도전과 그의 동생들을 제거하는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킵니다. 정도전의 이상은 그의 죽음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가 꿈꿨던 민본주의와 합리적인 통치 시스템은 훗날 조선의 중요한 정치적 유산으로 남게 됩니다.

조선 건국은 고려의 혼란을 끝내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려 했던 수많은 인물들의 열망과 노력이 빚어낸 결과였습니다. 그들은 비록 권력 투쟁 속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기도 했지만, 백성을 위한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그들의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1392년 전후 주요 역사적 사건 연표

연도 사건 상세 내용
1388년 위화도 회군 이성계가 요동 정벌을 위해 출정했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고려의 실권을 장악함.
1389년 우왕과 창왕 폐위 위화도 회군 이후 실각한 우왕과 그의 아들 창왕이 폐위되고 공양왕이 즉위함.
1392년 4월 정몽주 피살 이방원에 의해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피살당하며 고려 왕조의 운명이 결정됨.
1392년 7월 이성계, 왕위에 오름 이성계가 공양왕의 선위를 받아 수창궁에서 조선의 초대 왕으로 즉위함.
1393년 국호 '조선' 확정 새로운 국가의 국호가 '조선'으로 최종 결정됨.
1394년 한양 천도 조선의 수도를 한양(현재의 서울)으로 옮기고, 궁궐과 종묘사직을 건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