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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1394년, 한양 천도: 새로운 수도에 담긴 조선의 꿈

by 아리파파 2025.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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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4년, 한양 천도: 새로운 수도에 담긴 조선의 꿈

연재 제2회: 조선 건국의 초석을 다지다

지난 연재에서 1392년 조선의 건국을 다루며 혼돈 속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새로운 왕조를 세운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들에게는 이제 나라의 기틀을 견고히 다지는 과제가 남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과업은 바로 수도를 옮기는, 즉 천도(遷都)였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조선의 새로운 수도, 한양(漢陽)이 탄생하는 1394년의 역사적 순간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조선 건국 당시의 수도는 고려의 옛 수도였던 개경(開京)이었습니다. 하지만 개경은 이미 쇠락한 고려 왕조의 상징이었고, 권문세족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어 새로운 나라의 이상을 펼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개경의 지리적 위치가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새로운 나라의 출발을 알리고, 유교적 이상 국가를 구현할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1394년, 한양 천도: 새로운 수도에 담긴 조선의 꿈

새로운 수도 물색, 치열한 논쟁

천도 논의가 시작되자, 여러 후보지가 거론되었습니다.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정도전과 하륜 등은 새로운 수도 후보지를 물색하며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후보지로는 풍수지리적으로 길지로 알려진 무악(無岳), 계룡산(鷄龍山), 그리고 한양(漢陽) 등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계룡산이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습니다. 무학대사 등 여러 승려와 풍수지리가들이 계룡산의 지세를 극찬했고, 태조 이성계도 이곳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실제로 궁궐 공사를 시작했을 정도로 계룡산은 유력한 후보지였으나, 막상 공사가 진행되면서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한양에 비해 교통이 불편하고, 물길을 이용해 물자를 운반하기 어렵다는 지리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정도전과 같은 신진 사대부들은 불교적 색채가 짙은 계룡산보다는 유교적 이념을 구현하기 좋은 곳을 원했습니다.

이러한 논쟁 끝에 결국 한양이 새로운 수도로 결정되었습니다. 한양은 북쪽의 북악산과 남쪽의 남산, 동쪽의 낙산, 서쪽의 인왕산이 둘러싸고 있는 천혜의 요새였고, 한강이라는 큰 물길을 통해 물자를 쉽게 운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한양 건설, 철저한 계획도시

1394년 8월, 태조 이성계는 한양 천도를 선포하고 본격적인 건설에 착수했습니다. 한양은 단순히 궁궐을 짓고 왕이 사는 공간이 아니라, 철저한 계획 아래 만들어진 유교적 이상 도시였습니다. 정도전은 주례(周禮)에 입각하여 도시의 설계도를 그렸습니다.

"군주의 집무 공간인 궁궐은 북쪽에 두고, 백성들이 사는 종묘사직은 그 남쪽에 둔다." - 조선 경국전

이러한 원칙에 따라 궁궐인 경복궁을 북악산 아래에 배치했고, 그 동쪽에는 역대 왕들의 위패를 모시는 종묘를, 서쪽에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도시의 중심에는 6조(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관청이 위치한 육조거리를 조성하여 행정의 중심을 잡았습니다. 도시를 둘러싼 4대문(숙정문,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과 4소문은 유교의 덕목인 '인의예지'를 따라 이름 지어졌습니다.

이처럼 한양은 단순히 지리적 이점만 고려된 것이 아니라, 유교적 통치 이념과 철학이 도시 전체에 녹아든 계획도시였습니다. 모든 건축물과 거리의 배치가 왕조의 정당성과 국가의 안정을 상징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숨겨진 이야기: 백악산과 정도전의 헌신

오늘날 북악산으로 불리는 산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주산(主山)으로 삼았던 곳입니다. 당시에는 백악산(白岳山)이라 불렸는데, 이는 한양의 중심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산으로 여겨졌습니다. 정도전은 한양을 건설하면서 이 백악산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종묘와 사직을 두어 왕권을 견제하고 백성을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자신의 꿈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한양 천도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대규모 공사를 진행하면서 백성들의 고통이 컸고, 이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았습니다. 또한 정도전의 재상 중심 정치 구상과 천도 과정에서의 독단적인 결정은 훗날 이방원과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태조는 수도를 옮겨 나라의 기틀을 굳건히 하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수도는 왕실 내부의 권력 다툼이 심화되는 공간이 되기도 했던 것입니다.

한양 천도는 단순한 행정적 결정이 아니라, 고려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조선 건국 세력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서울의 도시 구조는 600여 년 전, 새로운 나라를 향한 꿈을 꾸었던 이들의 열망과 계획 속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1394년 전후 주요 역사적 사건 연표

연도 사건 상세 내용
1393년 국호 '조선' 확정 이성계가 새로운 왕조의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고, 정도전이 <조선경국전>을 저술함.
1394년 8월 한양 천도 결정 이성계가 계룡산, 무악 등 여러 후보지를 검토한 후 한양을 새로운 수도로 결정함.
1394년 10월 한양 천도 단행 태조 이성계가 개경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김.
1395년 경복궁 준공 한양에 새로운 법궁인 경복궁이 완성되고, 정도전이 궁궐의 주요 건물에 이름을 붙임.
1396년 한양 성곽 완공 한양의 방어를 위해 도성 전체를 둘러싼 성곽이 완공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