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제주 4.3 사건 (상) - 해방 공간의 비극, 그 시작 🏝️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 그 다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정부 수립 이후 독재와 저항의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따라왔는데요. 오늘은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지기 직전, 해방된 조국의 혼란 속에서 벌어졌던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픈 비극, 제주 4.3 사건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왜 그토록 끔찍한 비극이 시작되어야만 했을까요?
🕊️ 기쁨과 혼돈이 뒤섞인 해방 공간, 제주
1945년 8월 15일, 꿈에 그리던 광복이 찾아왔습니다. 제주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해방의 기쁨을 뜨겁게 만끽했어요.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해방된 조국은 극심한 이념 대립과 사회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특히 당시 제주도는 외지에서 돌아온 귀환 인구로 급격히 인구가 늘고, 극심한 흉년과 전염병까지 겹치면서 민심이 흉흉한 상태였죠.
이런 상황에서 미군정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경찰과 관료들을 다시 등용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도민들의 입장에서는 어제까지 자신들을 억압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미군정의 비호 아래 다시 권력을 잡은 셈이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죠. 이러한 사회적 불만과 좌-우익의 이념 대립이 맞물리면서, 평화롭던 섬 제주는 점차 폭풍 전야의 긴장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 비극의 서막, 1947년 3월 1일의 총성
비극의 씨앗은 1947년 3월 1일, 삼일절 기념식에서 뿌려졌습니다. 수많은 제주도민이 모여 3.1 운동의 정신을 기리던 그날, 행렬을 구경하던 한 아이가 기마경찰이 탄 말의 발굽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아이가 다치자 흥분한 군중들이 돌을 던지며 항의했고, 경찰은 이를 시위대가 경찰서를 습격하려는 것으로 오인하여 군중을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이 발포로 민간인 6명이 목숨을 잃고 여러 명이 다쳤습니다.
사과 한마디 없이 오히려 시위대를 폭도로 모는 경찰의 태도에 제주도민의 분노는 들끓었습니다. 3월 10일, 제주도 내 대부분의 관공서, 학교, 회사 등이 참여하는 대규모 민관 총파업이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일부 경찰관들까지 파업에 동참할 정도로, 경찰의 발포는 제주 사회 전체의 공분을 샀죠.
하지만 미군정과 경찰의 반응은 강경했습니다. 파업 주동자들을 잡아들여 혹독하게 고문했고, 당시 경찰의 최고 책임자였던 조병옥 경무국장 같은 인물은 제주도민을 '좌익 세력에 물든 불온한 집단'으로 매도하며 갈등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대화와 타협 대신, '빨갱이'라는 낙인과 탄압이 시작된 것입니다.
🔥 4월 3일, 마침내 터져버린 무장봉기
억압이 계속되자, 결국 터질 것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남로당 제주도당이 이끄는 무장대가 '탄압 반대, 단독선거 반대'를 외치며 도내 12개의 경찰 지서와 우익 단체를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주 4.3 사건의 공식적인 시작입니다.
물론 무장봉기는 정당화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단순히 '좌익 폭동'으로만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 배경에는 해방 이후 쌓여온 사회적 모순과, 국가 권력의 부당한 폭력에 대한 민중의 깊은 분노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 무장봉기를 빌미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제주도에 '초토화 작전'이라는 이름의 무자비한 진압을 명령합니다. 이제 제주는 걷잡을 수 없는 피바람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아름다운 섬이 어떻게 '붉은 섬'으로 불리며 죽음의 땅으로 변해갔는지, 그 참혹했던 학살의 진실을 마주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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